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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후의 여름 별장인 이화원

1998년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 된 중국에서 최대 규모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완전한 형태를 잘 유지하고 있는 황족 정원이다. 특히 서태후의 여름 별장으로 더 유명하다. 북경 서쪽 외곽인 해정구(海淀區 : 하이디엔취)에 위치해 있으며, 북경 시내에서는 15㎞ 떨어져 있다.

이화원의 전신은 북경 청의원으로, 후에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이 원명원을 불태웠을 때 함께 파괴되었다. 그러다가 광서 14년(1888)에 서태후는 해군 군비를 이용해서 다시 재건했으며 이 때 이름을 현재의 "이화원"으로 바꿨다. 1900년, 이화원은 또다시 팔국 연합군의 선공을 당했다. 서태후는 서안에서 북경으로 돌아온 후에 다시 거대한 자금을 들여 복구에 나섰다. 이화원은 무엇보다도 규모가 실로 엄청나며 총면적이 294㎡이다. 본래 평지였던 곳을 파내 만든 곤명호(昆明湖)와 호수에서 파낸 흙으로 쌓은 만수산(萬壽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중 수면이 전체의 3/4을 차지한다. 서태후가 이화원에 이처럼 각별한 관심을 둔 목적은 피서와 요양이였으며, 1903년부터는 대부분의 시간을 이 곳에서 보냈다. 서태후는 이 곳에서 신하들과 국정을 논할 일이 많이 생기자 정원 앞 부분에 궁전과 생활거주지구를 짓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화원은 궁전과 정원 두 가지 기능을 모두 갖춘 황족 정원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화원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곤명호는 인공호수이지만, 인공호수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그 규모가 실로 엄청나다. 겨울에는 얼음이 얼어서 스케이트를 즐기는 사람을 볼 수 있으며, 여름에는 보트와 곤명호 위를 운행하는 유람선을 타고 뱃놀이를 즐기는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다. 특히 곤명호 동쪽 기슭에 잇는 17 공교의 난간에 새겨져 있는 544마리의 사자도 볼 만하다. 또한 곤명호를 안고 있는 만수산은 역시 곤명호를 팔 때 나온 흙을 쌓아 만든 인공산으로 화려한 누각이 있으며 이화원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어서 역시 인기가 좋다.

이화원의 주요 명소들로는 정문인 동궁문(東宮門)을 비롯해, 덕화원(德和園),장랑(長廊),불향각(佛香閣) 등이 있다. 동궁문은 이화원의 정문으로 삼명양암(三明兩暗)의 무전식 건축양식이 사용되었으며, 덕화원에는 중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큰 규모의 경극극장이 위치하고 있다. 높이 21미터에 상,중,하 3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장랑은 동쪽으로는 요월문(邀月門)에서 시작하여 서쪽의 석장정(石丈亭)까지 전체길이 728미터에 총 273칸의 화랑으로 이어진 복도 건축물로 중국에서 가장 크고, 길며, 유명한 장랑(긴복도)이다. 마지막으로 불향각은 만수산 앞의 산비탈길에 세워진 높이 21미터의 거석 위에 세워진 전각으로 남쪽으로는 곤명호를 향하고 있고 뒤쪽으로는 지혜해불전(智慧海佛殿)을 기대고 있다. 이화원의 상징적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인수전

  30원을 주고 입장권을 사서 동궁문을 들어서 조금가면 인수전이 나오는데 여기는 서태후가 이화원에 있을 때 수렴청정을 하며 집무하던 곳이다. 또한 자신의 63세 생일 축하연이 열렸던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궁정구의 주요 건축물의 하나로서 원명은 근정저였다. 광서 연간에 현재의 이름으로 개칭했는데. 논어에 나온 인자수(어진 정치를 베푸는 자는 장수한다)에서 나온 이름이다. 인수전은 청나라 말년 자희태후와 광서 황제가 정무를 보던 대전이며 또한 중국 근대사상 변법유신 운동의 획잭치의 하나이다.1989년 광서 황제가 이 대전에서 개량과 두령 강유위를 소견하고 총리 각국 사무 아문장경 상행주로 임명, 이로부터 유신 변법의 서막이 열리게 되었다. 그러나 봉건 보수 세력의 반대로 “백일 유신”은 끝내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덕화원

  서태후가 대신들과 함께 경극을 감상하던 곳이다.

  경극이 공연된 장소는 3층 건물로 보이지 않았다. 서태후는 창가에도 자리를 만들어 양쪽으로 오가며 경극을 감상했다고 한다. 서태후는 경극보기를 무척 좋아하여 여기서 경극을 262일이나 보았는데, 가장 많은 때는 일년에 40일을 이곳에서 경극감상에 보냈다고 한다.

  옥란당(玉瀾堂)

  광서황제가 거주하던 건물로 서태후에 의하여 유폐된 곳이다.

  그 앞의 거대한 정원석은 패가석(敗家石)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집안을 망하게 한 돌이라는 이 정원석은 청나라 때 미(米)라는 관리가 북경의 방산부근에서 발견하여 자기집 정원으로 옮기려다가 도중에 운반비용이 너무 많이 나가 파산한데 연유하여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후일 황제가 이 돌을 이곳에 운반해 놓았다.

  지춘정(知春亭)

  곤명호 옆 호수 안으로 들어가 있는 아름다운 정자다.

  사방에 버드나무 가지가 드리워져 있는데 봄이 오면 춘색이 완연하여 이름 그대로 지춘정(봄이 왔음을 안다는 뜻)임을 느낄 수 있다.

  이곳에 서면 27도로 곤명호와 만수산을 볼 수 있는데 앞에는 탁 트인 곤명호, 오른쪽으로는 불향각 등 만수산이 그리고 왼쪽으로는 17공교와 이어진 작은 섬, 멀리 곤명호 건너에 아름다운 하얀 옥대교(玉帶橋)가 바라보이는 등 절경으로 감상할 수 있다.

  17공교(孔橋)

  17개의 구멍이 나 있어서 17공교라 하는데 다리 우에는 544개의 사자상이 조각되어 있다. 이 다리를 건너서 남호도라는 호수안의 섬에 들어간다. 곤명호 동쪽 제방과 호심의 남호도를 연결하는 대형석교로서 총길이는 150m이다. 교두와 난간 기둥에 도합 544마리의 돌사자가 조각되어 있는데 모두가 제 각각의 모습을 하고 있다.

  동우(桐牛)

  1755년 청 건흉활제가 수해를 방지하기 위해 주조했다. 17공교로 가기 전 호숫가에 있는 동으로 만든 소의 조각상을 실제 소와 흡사하다. 고대 우(禹)황제는 치수(治水)로 유명한데 작업을 마친 후에는 쇠로 만든 소를 강바닥에 가라앉혀 다시는 수해가 발생하지 않기를 기원했다. 이런 풍습이 당(唐)대에 와서는 강변에 놓아두는 것으로 바뀌었는데 여기 동우는 바로 여기에서 유래된 것이다. 하나의 훌륭한 예술작품으로 감상할 만하다.

  장낭(長廊)

  길이 728m의 중국 원림 중 가장 긴 낭하로서 옆면의 안과 밖에 산수화 꽃과 새 그림,삼국지,수호지,서유기,홍루몽 등 중국의 고전소설에서 나오는 명장면들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는데 세계에서 가장 긴 화랑으로 알려져 있다. 총 41,000여 폭의 그림이 있는데 하나하나 그림이 표현하는 내용을 생각하며 감상하면 매우 유익하다.

  동쪽의 요월문에서 서쪽의 석장성까지 총 길이 728m, 도합 273칸의 화랑으로 중국 회랑 건축 중 가장 크고 가장 길고 명성이 높은 장랑이다. 장랑의 채색화 제재는 꽃,새,나무,돌,산,물,인물 등 매우 광범위하다. 8세기 중엽 건륭 황제(기원1736-1796년 제위)가 경치를 그려 장랑의 273칸 화랑의 들보에 전부 옮겨 그렸다. 금세기 60년대 중국정부는 서호 풍경화를 보수하였을 뿐만 아니라 민족특색을 지닌 채색화 1만4천여 폭을 더 그려 장랑을 중국 최대의 화랑으로 꾸며 놓았다.

  불향각(佛香閣)

  만수산의 주전각으로서 이화원의 대표건물로 전각 내에는 천수관음(千手觀音)상이 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곤명호의 풍광은 너무나 아름답다. 만수산 전산 비탈 21m높이의 거색기반 위에 건축, 남쪽은 곤명호를 마주하고 북쪽은 지혜해불전을 등지며, 이 불향각을 중심으로 각 건축군이 매우 정연하고 대칭되게 양 날개로 펼쳐지면서 서로 호응하여 마친 한 마리의 박쥐모습을 하고 있다.

  소주가 (蘇州街)

  불향각을 지나 만수산을 넘어 내려가면 북문 옆에 소주가 나온다. 이곳은 소주의 거리 모양을 본떠 만든 것인데 작은 강 양옆에 많은 상점, 주점, 차관(차 마시는 곳)등이 늘어서 있어 황제가 황후와 비를 데리고 이곳에서 물건을 사고 술과 차도 마시며 즐겼던 장소이다. 당시에는 태감과 궁녀들이 상인과 일반백성의 복장으로 하고 장사해서 황제를 즐겁게 하였다 한다. 황제는 비록 최고 통치자이긴 하나 일반백성처럼 자유롭게 거리에 나가서 어울려 지낼 수 없어 궁여지책으로 이러한 곳을 만들어 지냈다는 것이 흥미롭다.

  건륭황제가 여러 번 강남지방을 여행하면서 특히 소주의 거리모양에 매료되어 이곳에 소주의 거리모양을 본떠 만들었다.

  관광객은 이곳에서 당시의 돈인 원보를 교환하여 쓸 수 있고 남은 돈은 다시 중국돈으로 바꿀 수도 있는데 물론 중국돈을 직접 사용해도 된다.

  해취원(諧趣園)

  소주가에서 동문쪽으로 나오다 보면 오른쪽으로 보이는 정원중의 정원(園中之園). 가운데가 호수이고 정자와 누각이 있는데 통로가 직각으로 꺾여 삼보일회(三步一回), 오보일절(五步一折) 세 발작 걸으면 한번 돌고, 다섯 발자국 걸으면 한번 꺾인 다는 말대로 돌고 꺾일 때마다 경치가 새롭게 전개된다. 가히 중국정원의 대표작이라 할만하다.

  청안방(淸晏舫)

  서태후는 이 곳 여름 별궁에 기거하면서 군함의 건조비를 유용하여 움직이지 않는 돌배를 만들었다. 청나라 말기 잇따른 외우내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궁전 양식의 대리석 석방에서 파티와 뱃놀이를 즐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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